[책]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 히가시노 게이고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서 무대연습이 시작된다.
이른 봄, 산중의 펜션에 7명의 남녀가 모인다. 새로운 작품의 오디션을 합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극단의 연출가 도고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현재 머물고 있는 펜션을 '폭설로 고립된 외딴 산장'으로 설정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비하라고 지시합니다. 외부와의 접촉 금지, 오디션 취소 경고 등의 규칙이 적혀있다.
산장안에는 인위적으로 놓은 추리소설 책들이 놓여있고 이들은 새롭게 연출될 작품의 배역을 스스로 몰입하며 준비해야한다.
그렇게 찝찝하지만 일단 받아들인 단원들이 맞이한 다음 날 아침, 피아노를 치던 여자 단원 하나가 사라지고, 피 묻은 종이가 발견된다.
여자단원은 헤드폰 줄에 목이 감겨 있고 목이 졸린 흔적이 있다.
단원들은 쪽지가 연출가의 설정으로 이해하고 연극의 배경인 '과연 누구인가'의 각자 역할을 맡아 추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셋째 날 아침 또 다른 여자가 사라지고 실제로 피 묻은 흉기가 발견되면서 남은 단원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고립된 외딴 산장, 클리셰를 만들어 내는 능력
사실 폭설로 고립된 산장이라는 그 뻔한 설정은 익숙하면서 흥미롭다. 특정한 인물들을 한 공간에 가두고 그안에서 나갈 수 도 외부에서 출입도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기에 굉장히 유용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내용을 접했고 더이상의 신선함을 느끼기 어렵다. 그저 눈이 덥혀 고립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추리물엔 흥미가 떨어지게 된다. 분명 익숙하고 흥미로운 설정이기에 흥미가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뻔한 설정, 고립되지 않은 공간을 고립되게 만들었고, 외부와의 출입이 가능하지만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 가장 뛰어난 점은 이러한 상황을 납득이 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배우들이 봉준호감독의 영화에 캐스팅이 되었는데 펜션을 나가면 실격처리가 된다면 과연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살인은 일어나고 있지만 시체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고 실날같은 희망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외부와 접촉하기도 그렇다고 벗어나기도 어렵다. 작가는 이러한 폭설로 고립된 산장이라는 설정을 완성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이다.
의외의 재미 살인인가 아닌가? 범인은 누구인가?
사실 보통의 추리물에서 가장 중점이되는 지점은 범인이 누구인가?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한 단계 전을 고민하게 한다. 살인인가? 연극인가? 살인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설정에서 이어지는 이 고민이 사건을 사건으로 온전히 보지 못하게 하고 어설픈 점들과 의아한 점들을 그냥 넘어가게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독자가 의아함을 느낄만한 부분을 책 속의 인물을 통해서도 역시 내비치면서 책에 몰입하게 도와준다. 독자와 작중 인물들이 살인이 아닌거 아니야?라는 의문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게 이어가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주는 게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구성, 잘 엮은 의문점
전체적인 스토리의 맥락이 아쉬웠다. 일단 살인사건을 전제로하는 추리소설이라면 개인적으로 동기와 흉기, 살해 방법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동기가 조금 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살인을 마음 먹은 동기와 그 살인관 관련된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과 태도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흉기, 범행수법은 너무 허술했다. 물론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 극단 배우라는 일반인의 설정을 가지고 있기에 치밀하고 기발한 방법이 나오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실 많이 어떠한 감흥도 없는 살인이었다.
추리물의 클라이막스는 역시 범인이 밝혀질 때의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범인도 그리고 범행 수법도 애매한데 그 살인을 밝혀가는 과정 역시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점, 수상하게 여기라고 미리 알려준 단서들이 마지막에 다 잘 맞춰진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이 매끄러운 느낌도 뭔가 개운함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는 아마 처음 갖춰진 범행이 어설픈 감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이 추리극의 마무리를...
완벽하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