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지의 서울

제작진: 연출 박신우, 남건 / 극본 이강
출연진: 박보영, 박진영, 류경수, 원미경, 김선영, 장영남, 차미경
내 삶은 이렇게나 복잡하게 꼬여있는데,
타인의 삶은 참 단순하고 쉬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저 외모였으면, 저 조건이었으면, 저 성격이었으면…
인생이 지금보단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막상 누군가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아픔과 고난을 가진,
그저 행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사랑과 연민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에게는 어떨까요.
그동안 어떤 아픔과 고난을 안고 살아왔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남에게는 들이대지 않을 가혹한 잣대로
나 자신을 몰아붙이고 미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미지의 서울은 서로 인생을 바꿔 살아보며
내 자리에서 보이던 것만이 다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사랑스러운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로
다른 이의 삶을 마음 깊이 이해하는 다정함과
더 나아가 나의 삶도 너그럽게 다독일 수 있는
따뜻한 연민을 권하고자 합니다.


드는 생각
무던해서 더 눈물겨운, 우리가 사랑한 ‘미지의 서울’
박보영이라는 경이로운 캔버스: 기술을 넘어선 담담함의 미학
내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박보영이다. 단지 그가 이번 작품에서 1인 2역을 매끄럽게 소화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지의 서울>에서 그가 보여준 담담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연기는, 지금까지 보아온 박보영 개인의 필모그래피는 물론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과 비교해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오직 얼굴만 같을 뿐인 두 인물. 박보영은 미지와 미래의 시각적 외형만 공유할 뿐 걸음걸이, 말투, 미세한 시선 처리와 손짓의 속도까지 완벽하게 분리해 내며 극의 몰입도를 극상으로 끌어올렸다. 굳이 자막이나 대사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온몸으로 두 사람의 차이를 느껴지게 만든 것은 물론, 미지와 미래 각자가 가진 결을 너무나도 잘 살려내어 시청자로 하여금 두 인물 모두에게 깊이 공감하게 만들었다.
거울이 된 ‘인생 교환’: 화려함 뒤에 숨은 서글픈 그늘을 마주하다
이 드라마에서 '인생 교환'이라는 클리셰는 상대를 기만하거나 삶을 빼앗기 위한 통속적인 수단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가깝고도 서로를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인생 궤적을 그대로 밟아보며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을 깨달아가고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뭉클한 과정으로 그려진다.
자매가 서로의 자리에 서서 마주한 것은 상대방의 화려함이 아닌, 그 삶을 지탱하기 위해 외롭게 감내해야 했던 '그늘'이었다.
미지는 미래의 숨 막히는 오피스 라이프와 타인의 서늘한 시선 속에서 동생이 앓았던 외로움을 배웠고, 미래는 미지가 머물던 한적한 시골 마을 '두손리'에서 비로소 숨을 고르고 속도를 늦추는 법을 배웠다.
박보영은 이 미묘한 균열과 융합의 과정을 과장된 감정 분출 없이, 담담히 연기해내며 서른 살 자매의 방황에 가슴 절절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내가 발 디딘 서울, 그리고 미래의 '두손리'
솔직히 지금 서울에 살고 있지만, 나에게 서울은 참 복잡한 감정을 주는 공간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은 한적한 시골에 가까운 경기도에서 보내고, 스무 살 대학 진학과 함께 다시 돌아와 이제는 인생의 가장 오랜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처음 마주했던 서울은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지만, 지금의 서울은 '떠날 수만 있다면 언제든 떠나고 싶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회색빛 도시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나는 미지보다는 서울이라는 빌딩 숲에서 질식해가던 미래에게 더 마음이 쓰였고,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두손리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땀 흘리는 모습에서 기묘한 카타르시스와 깊은 힐링을 얻었다.
기적 대신 무던함을 택한 결말이 건넨 위로
드라마의 결말이 지나치게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적당히 무난하고 덤덤하게 마무리되어서 참 좋았다. 어쩌면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위해 더 통쾌하고 유쾌한 해피엔딩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판타지 같은 성공 대신, 그들이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궤적 위에 겨우 '약간의 희망' 한 줌을 심어두는 지극히 현실적인 마무리를 택했다.
딸기 농부와 상담사라는,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내일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그 무던함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큰 위로와 살아갈 힘이 되었다. 처음 그들이 품었던 거창한 성공(미래의 행시 합격, 미지의 육상 선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지라도, 수정된 각자의 삶의 궤도에 맞춰 다시금 발을 내딛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건조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더라고요.
시골이라고, 딸기밭이라고 세상이 봐주는 거 없대요.
그런데 신기하죠? 그 차가운 흙바닥에서 뒤지게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까,
비로소 내 발로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기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