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소년심판: 만으로 14살 안 되면 사람 죽여도 감옥 안 간다던데 그거 진짜예요? 신난다

[드라마] 소년심판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그 나이에 감히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제작사: 길픽쳐스, 지티스트

제작진: 연출 홍종찬, 극본 김민석

출연진: 김혜수, 김무열, 이성민, 이정은

 

 

 

소개 & 기획의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소년범이라고 해도.

소년범을 혐오하는 까칠한 판사가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한다.

청소년 범죄율이 가장 높은 법원이라니 이제 법정의 칼바람은 예고된 것일까.

 

지방법원 소년부의 엄정한 판사.

 

소년범들을 재판하는 판사인 한편,
뼛속 깊이 소년범을 혐오한다.

소년 범죄로는 믿을 수 없는 충격의 연속인 잔인한 범죄와
그런 이들에게 자비라곤 없는 심 판사의 묵직한 재판이 시작된다.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다루며,

 

소년범에 대한 반감과

정의와 형벌에 대한 국건한 신념 간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간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그 나이에. 감히.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줄거리 & 인물소개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심은석이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소년범죄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이다.

 

 

심은석 판사, 

 

“가르쳐야죠, 사람을 해하면,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소년범에 대한 차가운 분노를 가졌다.

 

항상 그 누구보다 엄하고 냉정하게 죄를 판단한다.
법의 엄정함을 법으로 증명하겠다는 일념으로 사건 조사까지 임한다.

 

부모가 가르치지 못했고, 사회가 벌하지 않는다면

법을 우숩게 알 것이라는 신념으로

적어도 법만은 처벌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엄격하고 엄중하게 처벌하지만, 그 안에는 소년들을 향한 애정이 있다.




차태주 판사,

 

“소년에게 기회 주는 건 판사밖에 못해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인 판사.
소년범에게 강한 처벌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신념의 소유자이다.

올바른 길로 소년들을 인도하기 위해 때로는 심은석의 대척점에 서게 되지만,
좌배석 판사로서 물심양면 돕기도 하는 따뜻한 인간미의 소유자.

 

피해자, 가해자뿐만아니라 모든 소년소녀들이 건장하게 성장하길 원한다.

 

 

강원중,

 

“재판부가 무슨 수사기관이야?”

사건의 진실보단 조용한 재판의 마무리를 원한다.

자신의 정계진출을 위해서.

 

원칙과 소신을 지켜 판결하고,

정당한 법을 집행한다.

 

촉법소년법에 연령을 낮추거나 형량을 높이는 것에는 동의하나

촉법소년법 폐지에는 현실성이 없어 반대한다.

 

정계에 진출하려는 것도 현실성있는 법의 제정,

결국 촉법소년들을 교화하는 것에 압장서기 위함이다.

 

오늘 내린 처분은 합당한 처분인가?
그 처분으로 피해자는 억울함이 해소됐는가?
소년은 반성하는가?

끝났지만, 끝난게 아니지. 그게 우리일이야.


 

드는 생각

심판사, 일부로 성을 심씨로 정했을거라 생각한다. 심판자라는 억양이 비슷하기에.. 물론 뇌피셜이다.

 

네명의 판사들이 촉법소년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이는 우리사회가 촉법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동일하게 매칭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아직 아이가 없어 부성애를 모른다.가족애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일부 알지만내 자식이 범죄와 같은 행동을 보일 때 나의 감정은 아직 알지 못한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촉법소년에 대해 아주 엄격한 처벌을 해야한다는 입장이다.사람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반인륜적일 수 있으나, 처벌로 인한 가해자의 고통보다는 피해자가 법을 통해 앙금이 사라질 수 있다면 법이 가혹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것이 가해자의 갱생의 여지나 그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작은 범죄는 아니지만 사기나 절도와 같은 범죄는 이해할 수 있으나,살인, 폭행, 성범죄와 같은 중범죄에는 연령과 상관없이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정상참작이나 이해할 만한 부분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 올바르게 행해질 것이라 믿는다.

 

 

촉법소년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먼저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것에만 집중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아이에게 붙어서 놀아주고 돌봐준다면 좋겠지만, 대신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가난하지만 옆에 있어주는 것과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대신 부모가 옆에 없는 것.. 부자가 아니라면 현실적인 문제라 생각한다. 결국은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한다. 

아이를 돌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이를 남보다 잘 키우고 싶어서 우리는 아이와 시간을 함께할 수 없는 이 구조적 모순을 조금이라도 사회가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자기 자식만을 위하는 모습도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내 자식만 잘났고, 내 아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어린 아이들을 더 이기적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잘못을 해도 너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부모, 왜 우리 애한테 그러냐는 부모, 어떻게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수 있을까 싶다. 또 자기 아이만 잘 키운다고 자신의 아이가 안전해지고 건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을거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아파트 단지의 벽만 높이고 보완요원만 세운다고 사회가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결국 섞이고 서로간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단한명의 살인자만 있어도 세상은 흉악하다. 벽을 높이는 것이 아닌 한명의 흉악범이 생기지 않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기르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까 싶다.

예날에는 아이를 마을 전체가 키웠다고들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엔 친구 엄마도 엄마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의 잘못에 엄중한 처벌을 원하는 만큼 그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와 주변 어른들 역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자식이 생긴다면, 내자식만 위하고 남의 자식은 거들떠도 안 보는 한 낯 사람에 불과할테지만..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오늘 처분은 소년에게 내렸지만,
그 처분의 무게는 보호자들도 함께 느끼셔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