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방주: 구약성서 속 노아의 일화와는 달리, 홍수가 일어나는 곳은 방주다. 구원은 여기에 없었다.

[책] 방주 - 유키 하루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방주 안의 홍수, 일단 콘셉트가 좋다

지하비밀 시설 조금 뜬금없이 등장한다는 전제만 제외하면 콘셉트 자체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동아리 친구들 6인과 탐정 역할의 1인 그리고 우연히 마주치게 된 가족 3인 10명이 지하 공간, 속칭 "방주"에 갇히면서 클로즈드서클물의 서막이 열리는 시작적 진부함 역시 갇힘과 동시에 일어나는 살인 사건으로 상쇄되어 사라진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살인 사건보다 갇혔다는 사실에 더 중점을 두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만 독자인 나는 갇혔다는 상황보다 살인이라는 범죄에 더 관심이 간다. 그 덕분에 추리소설의 전형인 고립보다 완벽하게 일어난 살인에 더 집중하면서 흥미가 유지된다.

 

그렇게 보다가 보면 물이 차오른다는 설정, 방주는 홍수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히려 그 안에 갇혀 물이 차올라 모두 함께 죽고, 그것을 막아줄 한명의 구원자인 살인범을 찾는다는 그 설정 자체가 읽는 내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설픈 추리와 완벽한 해소

나는 십계를 먼저 보고 방주를 보게 되었다. 십계와 방주 모두 보면서 추리가 조금 어설프고 빈공간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추리물을 볼 때 디테일과 잘짜여진 구성이 좋으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유키 하루오는 추리 자체에는 어설픈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 추리를 하는 인물을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더 논리적인 인물로 설정하고 글을 쓰는 시점을 추리하는 사람이 아닌 그 주변인으로 설정한다. 미흡한 추리와 작가의 장점인 평범한 사람의 심리 표현이 잘 어우러지는 방법을 절묘하게 선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추리는 아쉽지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뒤에서 밝혀지면서 완전히 해소된다. 처음 범인의 지목과 문제 해결을 듣고 나면 개인적으로 찝찝했던 요소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느낌이다. 소설이라는 것이 분명 불필요한 요소를 넣지 않았을텐데 일부러 거슬리는 이야기를 남겨둔 추리가 의아함을 들게 한다. 하지만 그 부족한 추리가 아쉬움으로 남을 때 쯤 작가는 내가 가졌던 의문을 말끔히 지워준다. 범인이 알려주는 완벽한 사건의 전말.

 

나는 추리물에서 빼어난 탐정이 사건을 모두 밝히면서 범인을 잡아내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작가는 범인이 탐정보다 뛰어나 모든 사실을 잘 숨기고 조금은 어설프지만 납득가는 추리로 독자들을 속인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사건의 완전한 해설을 직접 범인이 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유키 하루오의 작품을 읽어 본 것은 이 번이 두번째이지만 역시 책이 발간될 때 마다 찾아 볼 것 같다. 오랜만에 또 괜찮은 작가를 만난 것 같아 기쁘다. 그럼 안녕.

 

누군가 한 명을 희생하지 않으면 
이 방주에서 탈출할 수 없다.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가?
그야 물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