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이 사건에는 악의도, 계획도 없다. 그저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뿐.

[책]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 이노우에 마기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산속 마을에서 발생한 신흥 종교 단체의 집단 자살 사건.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녀. 그리고 목이 없는 교주의 시체.
사건은 완벽한 밀실에서 벌어졌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세간은 이를 '기적'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이때, 푸른 머리칼을 가진 기묘한 탐정 우에오로 조가 나타난다. 그는 범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적'이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트릭과 물리적 가능성을 부정하려 한다.

 

 

일반적인 추리 소설이 '단 하나의 진실'을 찾기 위해 소거법을 쓴다면, 이 소설은 '기적'이라는 결론을 남기기 위해 세상의 모든 논리적인 가능성을 논파해버리는 역발상의 구조를 가진다.

수많은 반(反)기적론자들이 달려들어 트릭을 제시하지만, 탐정은 그 모든 가설을 비웃듯 받아친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그리고 탐정의 오만함과 천재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마디.
"밀실 트릭? 공범의 존재? 기계적인 장치? 우연의 일치?"

탐정은 나른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참신한 구조와 딜레마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추리'를 다루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탐정이 범인을 잡기 위해 소거법을 쓴다면, 이 작품은 '기적'을 증명하기 위해 현실적인 모든 가능성을 소거한다. 자신의 반박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 구조는 확실히 신선했고, 이 지점에서 오는 지적 쾌감은 분명 존재했다.

 

헐거운 밀도와 아쉬운 추리

좋은 설정과 구조에 비해 스토리를 지탱하는 밀도가 턱없이 부족하다. 탐정이 논파해야 할 상대방의 추리(가설)들이 지나치게 허술하다. 아무리 소거법을 위해 '묵살될 추리'라 하더라도, 독자가 납득할 만한 최소한의 탄탄함은 갖췄어야 했다. 적들이 너무 쉽게 무너지다 보니 탐정의 승리가 가볍게 느껴지고, 결말에 드러나는 최종 추리마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힘이 빠진다. 이는 많은 독자가 지적하는 '용두사미'의 원인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실종, 혹은 번역의 문제

미스터리 소설의 핵심 재미 중 하나인 '탐정 캐릭터의 매력'이 사라진 느낌이다.

제목인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가 주는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본문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 전개 자체가 버거워 보일 정도다.

 

이것이 원작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의구심이 든다.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남겨둔 단어들에서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고, 탐정의 대사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보다 건조하고 겉돈다. 라이트노벨 감성의 캐릭터성(푸른 머리, 오드아이 등)을 내세웠음에도, 정작 텍스트 내에서 그 매력이 전혀 살지 못한 점은 뼈아프다.

 

"설정은 천재적이나, 그 가능성을 살리지 못한 전개와 번역." 안티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실험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헐거운 논리와 무매력적인 캐릭터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