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너는 나의 봄
오래된 상처를 긁어내려고
나는 새로 돋은 살까지 다치게 하고 있었다.
제작사: 화앤담픽쳐스
제작진: 연출 정지현, 극본 이미나
출연진: 서현진, 김동욱, 윤박, 남규리, 오현경, 김예원, 지승현, 황승언
기획의도
당신의 일곱 살로부터
당신은 얼마나 멀리 도망쳐왔나요?
"좀 천천히 먹어. 없어 보이게 웬 식탐이야?"
"네가 오 남매 중 막내의 생존법을 알아?"
어린 시절 배고팠던 아이는 충분히 풍족한 삶을 사는 어른이 되어서도
음식 앞에서 느긋해지지 못한다.
"너는 아무한테나 욕도 잘 하면서 왜 외국인 앞에서만 기가 죽어?"
"1학년 때 영어 선생이 내 발음 이상하다고 애들 앞에서 놀렸어."
반 친구들 앞에서 놀림 받던 아이는 평생을 영어 울렁증에 시달린다.
"당신만 자식도 아닌데 왜 그렇게 친정 일이라면 잠도 못 자고 애를 써?"
"남동생은 할머니 댁 가면 장난감 어지르면서 노는데,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설거지하고 걸레질했었어, 쓸모 있어 보이려고."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던’ 둘째 딸은 아직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가족을 위해 애쓰다 지쳐 가족을 원망하게 된다.
아픈 곳, 트라우마, 컴플렉스,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어른들의 핑계,
혹은 아직도 우리를 따라다니는 일곱 살의 나,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 배고팠던, 수치심을 느꼈던, 서러웠던 일곱 살의 아이는
우리가 멀쩡한 어른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림자에 숨어 있을 뿐
우리가 약해지는 어느 날, 다시 우리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은 아닐까.
"다 너를 비웃을 거야." "너만 결국 갖지 못할걸."
"네가 사실 쓸모없다는 걸 들키고 말 거야."
여기 저마다의 일곱 살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드라마는 묻게 될 것이다.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갖고 싶은 인형을 가질 수 없었던, 배고팠던,
사랑받기 위해 몹시도 애를 쓰던, 버려질까 두려웠던, 끝없이 비교당했던,
당신의 일곱 살로부터 당신은 얼마나 멀리 도망쳐왔나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그 과거를 지금의 우리가 다르게 대할 수는 있을 거라고.
누군가의 뜻 없는 미소를 나를 향한 비웃음으로 뒤틀어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잘 지내보자고 내미는 손을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할퀴어 버리지 않으려면,
일흔이 넘어 백발이 된 머리카락으로 부모의 무덤에 찾아가서
그땐 나한테 왜 그랬냐고 울지 않으려면,
우리는 더 늦기 전에 그 어린아이를 만나야 하지 않겠냐고.
일곱 살의 나를 힘껏 안아주고,
오해를 풀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비로소 놓아줌으로써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단단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줄거리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해결 못한 어린 날의 상처를 직면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스토리이다. 물론 약간의 스릴러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여자,
"몇 번이나 나는 나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던 걸까.
그만 잠들고 싶었을 일곱 살의 나를 나는 몇 번이나 흔들어 깨운 걸까.
오래된 상처를 긁어내려고 나는 새로 돋은 살까지 다치게 하고 있었구나."
아빠는 학생운동을 하다 군대에 끌려 온 대학생이었고 엄마는 부대 앞 가게에서 일하던 아가씨였다. 아빠는 엄마를 ‘나의 나타샤’라고 불렀고 시를 읽어주었고 엄마와의 사랑을 말리는 모든 사람과 인연을 끊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나지 않아 아빠는 엄마를 ‘내 인생을 망친 년’이라고 불렀고 끝없이 술을 마셨고 온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따돌렸다.
엄마는 어린 다정에게 취한 아빠를 피해 방문을 잠그는 것을 가르쳤고 온몸으로 다정과 태정을 지켰다. 엄마는 늘 반짝이는 것을 조심하라고 했다, 그것은 공짜일 리가 없다고. 인어공주에게 세상이 그랬듯, 다리를 주면 혀를 잘라 간다고. 그래서 다정은 왕관 쓴 왕자 따위가 아니라 캄캄한 벽 속에 묻혔을 때 소리 내어 울어줄 검은 고양이를 기다렸다. 먼먼 어느 나라의 공주가 아니라 귤 한 봉지를 사서 들고 들어오는 옆집 아저씨의 딸이 되고 싶었다.
부족함 없는 다정에게 제일 어려운 숙제는 연애다. 엄마를 닮은 걸까? 다정은 아빠를 닮은, 그러니까 쓰레기 같은 남자들만 줄줄이 만나왔다. 이유가 뭘까? 왜 쓰레기 같은 남자를 만나야 편해지는 걸까.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이사를 했지만 그 건물에선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특별히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남자들을 만난다. 자신의 아래층에 사는 보자마자 쓰레기 자석임을 알아 본 정신과의사와 자신을 따라다니는 자신이 꿈꾸던 남자.
그 정신과의사는 그 자신을 따라다니는 남자를 조심하라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 남자,
"이건 그냥 흉터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지울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죠.
바꿀 수도 없는 과거하고 싸우느라 지금이 힘들면 안 되니까"
아픈 형에겐 골수와 림프구와 백혈구와 고립구가 필요했고 그걸 수혈해 줄 수 있는 가족은 이제 겨우 열 살이 된 남자밖에 없었다.
네 번의 골수이식에도 낫지 않았던 형에겐 급기야 급성신부전이 찾아왔고 급히 신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남자밖에 없었다. 아빠는 더는 남자를 DNA 공장으로 쓸 수는 없다고 울었고, 엄마는 형을 포기할 수는 없어 울었다.
그날 밤, 아빠는 엄마가 절대 찾지 못할 곳에 영도를 숨겼다. 그렇게 가게 된 낯선 종교 시설에서 며칠을 보낸 남자에게 아빠가 다시 찾아온 건 형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남자는 슬펐고 아팠고 또 너무 어렸지만, 형을 잃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한 엄마는 끝내 그런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다.
남자는 정신과로 진로를 정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거짓말을 찾아내 꽁꽁 숨기고 있는 아픈 곳까지 고쳐주고 싶어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사람들을 사는 것처럼 살 수 있게, 죽고 싶은 사람들을 살고 싶게, 그렇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누군가를 구해준다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비로소 의미 있게 만드는 유일한 생존법이었으므로.
자신을 따라다니던 남자가 죽는다.
근데 알고보니, 살인자 싸이코패스였다.
자신에게 한 없이 좋아보였던 그 남자는 역시나 쓰레기였다.
나의 존재의 의미는 누군가를 살리는 데 있다.
결혼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쓰레기 아빠를 만난 것이, 누군가를 재활용 시키고 싶게 만들었다.
형을 살리지 못한 것이, 누군가를 살려야만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니다. 쓰레기를 이끄는 자석도 아니고, 누군가를 살려야만 의미있는 인생도 아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드는 생각
심리학을 배운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이후 모든 삶을 결정한다는 이론이었다. 물론 그 이론은 많이 수정되고, 이제는 다른 수많은 이론도 나왔지만 여전히 어린시절을 강조하는 심리학자들은 많다.
나역시 어린시절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여전히 어릴때 먹었던 음식이 가장 입에 맞다. 새로운 맛있는 음식, 여러 비싼음식들을 먹고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김치나 된장찌개처럼 익숙한 음식을 먹을 땐 엄마가 조리해준 방식이 가장 입에 맞다. 젓갈이 많이 들어간 김치는 비리고, 된장찌개에 바지락 같은 것 없이 그냥 개운하게 끓이는 것이 좋고, 미역국은 소고기로, 김칫국은 왠지 조금 싱거운게 좋다.
어찌 입맛뿐이랴.
나의 성격적인 특성도 아마 많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우리들을 언제까지 옭아맬까..
드라마는 어린시절의 상처를 보여준다. 누구나 겪었을 만한 흔한 상처부터 끔찍한 아픈 상처까지.. 그리고 같은 모습에도 서로 다른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런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그 어린 날의 나를 만나 보듬어 주어야 한다.
진정한 나의 행복을 얻기위해선, 그때의 나를 만나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지난 일이다. 이제 괜찮다. 너는 더이상 상처에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
진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는 잘 지내냐고 안 물어 보죠.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사람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봤을 때
"좋아"라고 대답하는 건 좋게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
"괜찮아"는 말할 힘도 없으니까 그만 물어보라는 것,
"나쁘지 않아"는 분명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너한테는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예요.
문제는 믿음보다 설렘이 먼저 와버린다는 거다.
그리고 문제는 그 대책 없는 설렘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게 됐다는 거고.
누군가를 마음에 들인다는 건 그 마음에 상처받기 좋은 구석이 생긴다는 것.
그걸 다 알면서도 그 손을 놓지 않겠다는 것.
상처받고 싶지 않다.
아픈 시절을 소환하는 바보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행복하고 싶다.
물에 빠졌을 때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내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 발밑이 얼마나 깊을지를 모른다는 것.
한 번쯤 깊이 빠져 본 사람은
그래서 두려움이 더 커진다.
그것이 강이라도 바다라도 사랑이라도.
깨어져도 된다.
힘 내지 않아도 된다.
누군갈 붙잡고 일어나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