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넌 상황을 자꾸 크게 만들어
불행은 그렇게 잘게 잘게 부숴서 맞아야 되는데
네가 자꾸 막아서 크게 만들어
난 네가 막을 때마 무서워
더 커졌다.
얼마나 큰 게 올까?
제작사: 스튜디오피닉스, 초록뱀미디어, JTBC스튜디오
제작진: 연출 김석윤, 극본 박해영
출연진: 김지원, 이민기, 손석구, 이엘, 이기우, 천호진, 전혜진
소개 & 기획의도
살면서 마음이 정말로 편하고 좋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항상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몸은 움직여주지 않고,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지리한 나날들의 반복. 딱히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는 말도 못 한다.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
해방. 해갈. 희열.그런 걸 느껴본 적이 있던가?
‘아, 좋다. 이게 인생이지.’라고 진심으로 말했던 적이 있던가?
긴 인생을 살면서 그런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살다가는 게 인생일 리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혹시 아무것도 계획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 보면 어떨까?
혹시 아무나 사랑해보면 어떨까?
관계에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기에 이렇게 무기력한 것 아닐까?
시골과 다를 바 없는 경기도의 끝,
한 구석에 살고 있는, 평범에서도 조금 뒤처져 있는
삼남매는 어느 날 답답함의 한계에 다다라 길을 찾아나서기로 한다.
각자의 삶에서 해방하기로!
줄거리 & 인물소개
견딜 수 없이 촌스런 삼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소생기 드라마다.
외지인,
하루를 견디는데 술만큼 쉬운 방법이 또 있을까?
마시다 보면 취하고, 취하다 보면 밤이고... 그렇게 하루가 간다.
이 생활도 괜찮구나.
우울한 기분은 잠깐. 우울하면 또 마시면 된다.
동네 어른이 잠깐 도와달래서 도와줬더니, 그 뒤로 틈틈이 부른다.
돈도 주고 밥도 주면서. 하루에 몇 시간 아니지만 일하면서 술 마시니
그렇게 쓰레기 같지만은 않은 느낌.
어느날 갑자기 이 마을에 들어와 조용히 술만 마시는 나에게,
사람들은 섣불리 말을 걸거나 자기들의 세계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뭔가 쓴맛을 보고 쉬는 중이겠거니 생각하는 듯.
사람들과 말없이 지낸다는 게 이렇게 편한 거였다니.
그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어떤 인간으로, 어떤 위치에 놓아야 될지,
얼마나 피곤하게 계산해가며 살았었는지 새삼 느낀다.
그렇게 지내는데 어르신의 딸이 찾아왔다.
이 생활에 푹 젖어있는 나를 다시 정신 차리게 해서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싶지 않다.
남녀관계에서 또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인간을 연기해야 하나. 그럴 의지도 기력도 없다.
이 여자, 태생적으로 주목 받을 수 없는 무채색 느낌이 나는 게,
사회생활 힘들었겠구나, 그래서 용트림 한 번 해봤구나 싶다.
어랏, 이 여자 은근 꼴통이네 이거. 물러날 기색이 없다.
그래, 잠깐인데 뭐 어떠랴.
불안하다.
그녀와 행복할수록 불안하다.
삼남매의 첫째,
아침에 눈뜨자마자 시풀시풀 거리다가 발등 찍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시풀시풀 거리다가 무릎 찍는 기정을 보고
엄마는 딴 게 팔자가 아니라고, 심뽀가 팔자라고, 심뽀 좀 곱게 쓰라고.
나이 들면 세련되고 발칙하게 ‘섹스앤더시티’를 찍으며 살 줄 알았는데,
매일 길바닥에 서너 시간씩 버려가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느라고
서울 것들보다 빠르게 늙어 간다.
밤이면 발바닥은 찢어질 것 같고, 어깨엔 누가 올라타 앉은 것 같고.
지하철 차창에 비친 얼굴을 보면 저 여자는 누군가 싶고.
나, 이렇게 저무는 건가.
그 전에.
마지막으로.
아무나.
사랑해보겠습니다.
아무나, 한 번만, 뜨겁게, 사랑해보겠습니다.
그동안 인생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마지막 종착지가 될 남자를 찾느라, 간보고 짱보고...
그래서 지나온 인생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지겨운 시간들뿐이었습니다.
이제, 막판이니, 아무나, 정말 아무나, 사랑해보겠습니다. 들이대 보겠습니다.
삼남매의 둘째,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철이 안 들었대. 왜?
할 말이 없거든. 왜 할 말이 없게? 내가 맞는 말만 하거든.
드럽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척 상황 분석하고 말하는 인간들, 돌아버려.
인간의 감정과 이성에 논리가 있는 줄 알아? 없어.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논리야. 애정이 논리야.
이 세상에 애정법 외에는 아무 법칙도 없어.
단박에 핵을 뚫고 들어가서 얘기하면 나 보고 다 철이 안 들었대.
철이 안 들었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다.
속없어 보인다는 말은 인정.
근데 결정적으로 내가 허튼짓은 안 한다.
이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안타깝다.
어떤 일(?)을 겪고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 둔다.
됐다. 그만 하자. 그만 해도 된다.
솔직히 어디에도 깃발 꽂을 만한 데를 발견하지 못했다.
돈, 여자, 집, 차... 다들 그런 거에 깃발 꽂고 달리니까 덩달아 달린 것 뿐.
욕망도 없었으면서 그냥 같이 달렸다.
애초에 느낌으로만 알고 있던 욕망 없는 자신의 성품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
성품이 팔자라 했다. 이 길로 쭉 가면 행복하지도 않고 지치기만 할 뿐.
삼남매의 막내,
사랑받을 자신은 없지만, 미움 받지 않을 자신은 있다.
자신을 대화의 중심에 놓는데 능숙한 또래들에 비해,
미정은 말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데 재주가 없다.
나의 말과 그들의 말은 다르다. 그들끼리 통하는 유쾌하고 소란스러운 말들은
어느 한 구절도 미정의 마음에 스며들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그래도 늘 웃는 낯으로 경청하고 수더분하게 들어준다.
까르르 웃어 넘어가는 또래들을 보면 여전히 낯설다.
저들은 정말 행복한 걸까? 나만 인생이 이런 걸까?
인생이 심란하기만 하다.
무표정하다가도 눈앞에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미소. 사회적으로 적응된 인간.
조직에선 그렇게 움직이나,
어려서부터 나고 자란 동네에선 무뚝뚝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는 깊은 얼굴이 된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
지칠 일 없이 지친다.
누구와도 싸우는 일 없이 무던하게 살아왔지만, 티내지 않고 있었을 뿐,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앙금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온 우주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 것은 아닐까?
지칠 일 없이 지친 원인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좋기만 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만 있다면!
앙금 하나 없이, 생각하면 좋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만들어보자. 그런 사람.
멈추지 말자. 주저앉지 말자. 이게 인생일 리 없다. 길을 찾자. 나는 해방될 것이다.
드는 생각
시골같은 경기도 끝자락, 삼남매, 서울살이에 대한 생각도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반칙이다. 설정이 그러면 그냥 인생드라마가 되어버리니까.
경기도 시골 촌에서 자랐다. 집에 텃밭은 당연히 있었다. 팔아서 돈을 벌진 않았지만 고추, 감자, 호박, 오이, 배추 등 꽤 다양한 것들을 심었다. 밤나무, 감나무, 앵두나무도 있었다. 시골이었다.
버스도 타려면 꽤나 걸어가야 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선 거의 3시간 가까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얼마 안가 서울살이를 시작했지만 그 얼마간 나는 대학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막차시간이 다되서라면서 혼자 이른 귀가를 했다. 남매 셋이 모여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낯설지 않다.
옛날 생각이 난다.
이 드라마를 아주 잘 보여주는 두 단어 해방과 추앙.
나를 추앙하라는 김지원의 대사는 지금 세상에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해방클럽 모임은 세상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추앙이 사라진 세상.
해방을 위해 애써야 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삼남매는 적응하려 했고, 보란듯이 살아보려 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는 것을 더 뼈져리게 느껴가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추앙한다. 아니 감히 그런 대단한 말로 표현할만한 감정은 아니지만.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보이는 내용들, 뜬금없거나 조금 억지스러운 설정들과 감정들이 꽤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반감이 없거나 공감이 가는 것은 그 논리도 없고 막되먹은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인듯 싶다.
현실은 늘 "불현듯"이며 "나도모르게"인듯 싶다. 보통 드라마를 볼때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는 나에겐 과거이며, 현재인 그리고 어쩌면 미래이기에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과연 누군가를 온전히 추앙하며 살 수 있을까.
나의 추앙은 누군가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대단할 수 있을까.
어딜 가나 속터지는 인간들은 있을 거고
그 인간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고
그럼 내가 바뀌어야 되는데
나의 이 분노를 놓고 싶지 않아.
나의 이 분노는 너무 정당해.
모든 사진의 출처는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