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걷고, 먹고, 멍 때릴 수 있다면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나는 여전히 여행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히 재밌지도, 의미 있지도 않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간혹 어떤 순간을 실감하는 게 다다.

그래서 즐겁다.

 

제작사: 더 램프

제작진: 연출 이종필, 극본 손미

출연진: 이나영, 한예리, 조현철, 심은경, 구교환, 서현우, 박인환, 김해연, 박세완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토요일 딱 하루의 여행을 떠나는,

국어 선생님 박하경의 예상치 못한 순간과 기적 같은 만남을 그린 명랑 유랑기 드라마다.

 

드는 생각

오랜만에 또 한번 나는 취향저격 드라마를 만났다.

이 드라마는 이나영이 여행을 가는 옴니버스식 구조로 된 드라마다. 하나의 에피소드 이후에 조금의 연결은 있지만 이야기 자체는 한편에서 마무리 된다.

 

처음 1화를 보고 놀랐다. 드라마의 호흡이 너무 나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나영이 혼자 떠나는 여행을 담담하게 담아낸 드라마인데 내가 여행하는듯 조금은 느린 템포의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에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그 대사는 마치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듯해서 깜짝놀랐다. "와... 내가 하고 싶은 그말을 대사로 해주네" 같은 기분이 들었다.

1화에서 힐링을 얻으니 2화부터는 퍽 당황스럽다. 힐링보다는 삶의 무게를 다시 지워준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특히 2화의 에피소드에서 이나영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너무 힘이 된다. 그렇게 좋은 응원은 없을듯 싶다.

3화는 여행에서 한번쯤 꿈꾸는 판타지가 일어난다. 혼자 국내 여행을 두번 갔었다. 두번 다 3박 4일 정도 떠났었는데 그 때  꿈꿨던 판타지 같은 일을 영화로 보여주었다. 아름답고도 섬세한 이야기다. 서울에 돌아와서의 행보까지도 참 그랬다.

4화는 감독, 혹은 작가의 본색이 드러난 화가 아닐까 싶다. 여행 중 만난 현실의 문제. 그것도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떠든다. 이 화는 여행과는 거리가 있다. 여행에서 만난 현실이랄까.. 그럼에도 역시나 좋은 출발과 좋은 마무리로 깔끔?하게 끝난다.

 

2화 에피소드 중 이나영이 부른 "백현진 - 빛"

말을 하다가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잃어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리니 저기 모서리가 있네
세 갈래 빛이 거기서 고요히 흐르네
그 빛을 따라 고개를 젖히니
창문 밖에 있는 태양이 보이네그 태양 아래에는 바로 네가 서 있네
너 로부터 오묘한 다정한 세 갈래 빛이
내 눈 속으로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아주 깊숙이 스며서 머무네
머무네 머무네 온통 머무네
내 눈 속으로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아주 깊숙이 스며서 머무네
머무네 머무네 뱅뱅 머무네

 

2화에서는 노래더니 이제 5화에서는 이나영의 춤까지 보여준다. 생각보다 느낌있는 그 춤사위를 보여주더니 마지막에는 더 격렬한 춤으로 마무리 짓는다. 영화 마더 수준의 수미상관이 아닐런지 싶다. 5화는 여행의 시간을 거꾸로 보여주는 편집을 보여주면서 궁금증은 키우고 그러면서도 의미는 깊이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연성에 자신을 맡기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리와인드에서 빅뱅이라니.. 좋다.

 

6화는 여행을 떠나는 모습부터 달랐다. 아침부터 부장의 전화가 계속해서 온다. 일이 터졌다. 하지만 여행을 나선다. 그렇지만 왠지 마음이 걸려 멀리 떠나지 못하고 집주변으로 떠난다. 부장의 전화는 외면한다. 오늘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어딘가 멀리 떠나지 못하는 하경을 보면서 참 인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마음으로 나선 여행 길의 초입에서 보게 된 자신의 신발 위 지렁이에 소스라치게 놀라다가 여기에 비오는 날 숨 좀 쉬어보겠다고 기어 나온 지렁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나서는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는 지렁이를 흙으로 보내준다. 사람 마음이 잘 들어나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비오는 날 저녁에 해먹는 김치 부침개.. 그 집에서 부쳐서 조금은 맛없어 보이는 그 부침개 까지도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화는 식도락 여행인줄 알았다. 오로지 빵집만을 가는 딱 하루의 여행. 제주도에 있는 맛있는 빵집들을 다 들려서 좋아하는 빵을 다 사먹는 본격 먹방 여행인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누군가의 발자취를 쫒고 제주도의 안의 삶을 옅보는 시간이었다. 결국은 빵을 가득채워 돌아오는 여행이었지만 빵만 가져온 여행은 아니었다.

8화는 그녀의 친구와 함께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과거 퉁명스럽고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하지만 그런 하경과 함께 여행했던 친구. 또 보자는 그 끝인사가 좋다던 친구와의 여행은 잔잔하면서도 짠한 그런 여행이었다.

 

박하경은 여전히 여행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드라마를 마무리 한다. 하자만 그럼에도 여행을 가야한다고, 즐겁다고 이야기 한다.

 

드라마는 어떻게 그렇게 사라지고 싶은 타이밍을 잘 잡아서 처음 오프닝을 여는지, 그리고 그 첫 장면과 마지막이 다시 연결되는 장면에서 참으로 놀랍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 그리고 현실로 돌아오는 여행이다.

 

드라마에는 희노애락오애욕이 녹아있었다. 한편 한편마다 특색이 있어서 비슷한 플룻으로 떠나는 여행임에도 너무나 새롭고 설레는 여행이었다. 8번의 여행이었는데 저마다의 매력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힐링인척 하더니 다음에는 고민을 하게 하고 또 설레게 하더니 싸운다. 추억여행인가 싶다가 현실의 여행이고 누군가의 수호신이 되었다가 자신의 수호신이 었던 사람과의 여행으로 마무리 한다. 연출도 대사도 스토리도 특히나 음악이나 배경도 굉장히 만족도가 높은 드라마였다.

 

사실 이나영이라는 배우의 연기에도 놀랐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호감을 가진 배우는 아니었다. 예전 네 멋대로 해라, 아는 여자, 우행시에서는 정말 좋아했었는데 다작하는 배우도 아니고 사실 너무 적게 하는 편이라는 생각이지만 그 이후에는 어쩐지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는 분명히 계속 기억할 것 같다. 연기는 물론이고 노래와 춤에 반했다. 배우의 이미지가 더해져서 극본, 연출, 음악 등 모든 것이 꽤 조화로운 너무 좋은 드라마였다.

 

그러니까 사라지고 싶을 때는
어디든 가보자

혼자라서, 낯선 곳이라서 용기가 없다면
딱 하루도 괜찮다

걷고, 먹고, 멍~ 때릴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좋으니까

 


모든 사진의 출처는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