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 시가 아키라
돈 때문에 나락으로 빠지고 돈 때문에 망가지는 인생
한 번 떨어지면 벗어날 방법은 없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어린 딸을 데리고 도쿄로 도망쳐 온 싱글맘 다카요.
그녀에게 임대료 체납 독촉장이 도착한다.
강제 퇴거까지는 열흘밖에 남지 않았지만
친정도, 대부업체도 그녀를 외면한다.
그러다 결국 불법 개인 사채업을 하는 SNS에 연락을 하게된다.
불법 사채업자 미나미는 돈을 빌려 주고 친절하게 상담까지 해준다.
대출금 변제일을 유예는 물론 육아 고민이나 한부모 가정의 고충과 같은 개인적인 상담까지 해준다. 그런 친절함에 대출금은 늘어만 간다.
대체 ‘미나미 씨’는 누구일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맞을까?
빚밖에 없는 인생에서 벗어날 길은 있는 걸까?
속이는 게 없는데 뭘 속인 건가요..?
책을 다 읽고 나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어떤 독자라도 반드시 '이게 어떻게 된거야?!'라고 다시 책장을 넘겨서 읽어보지 않을수 있을까요. 이윽고 작가에게 깜빡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짜릿한 반전이 대단하다고 무릎을 칠 만큼 뛰어난 구성의 미스터리입니다." 이렇게 적혀있다. 나는.. 이 책에서 반전을 본 적이 없는데.. 반전이 있는 책이었어? 뭐지... 나는 반전도 못알아 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면 미나미의 정체가 반전이라는 것 같은데.. 이 정체는 이미 속는 사람을 읽으면서도 예측이 가능하고 속이는 사람의 초반부만 읽어도 확신이 든다. 근데.. 이게 뭔 속임수와 반전이 있다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아무리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느 정도 읽어 본 사람은 맞지만 그렇다고 처음 보는 사람이 이정도의 생각을 못할 것이라 생각이 들지도 않고 알았다고 소름끼치거나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반전이라고 한다면 속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 달라지는 마지막 장면 하나 정도다.
추리/미스터리가 아닌 사회소설이다.
이 소설의 분류가 추리/미스터리로 되어있지만 사실 현실사회의 문제를 잘 담아낸 사회소설로 분류되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SNS를 통해 이뤄지는 개인 사채업에 대한 내용이 굉장히 심도 있게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몇 년 전 노출사진을 담보로 불법으로 돈을 빌려주고 해당 영상이나 사진을 유포하거나 지인들에게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대출 받은 사람들을 압박하는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이 책에서는 딜리버리 헬스라는 이름으로 성매매 업소를 권하면서 빚을 갚게 하는 내용이 나오고, 그러한 일에 대해 처음엔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나 오히려 적성을 찾은 사람처럼 일하는 내용도 일부 담겨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주인공이 당장 필요했던 돈은 20만엔으로 한국돈으로 하면 대략 180만원 정도다. 이 돈이 크다면 크겠지만 작다면 작은 돈일 수도 있다. 이 돈 때문에 점점 악화 상황을 보면 한번 빠지면 얼마나 더 급격하게 나락으로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돈을 더 꾸게 만들기 위해 친절함을 이용한다는 점과 돈을 갚게 하기 위해 취업을 알선한다는 점 등이다. 친절을 대가로 그 사람이 일을 하고 돈을 벌면 고리로 회수해 간다는 지점이 꽤 인상 깊었다. 분명 불법적인 행위이고 대출을 받는 사람들에게 불리하고 더 수렁에 빠뜨리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 어차피 빠진 수렁에서 유일하게 손을 건내는 사람이라는 점들이 묘하게 얽혀 있어서 좋았다.
속인 자는 누구인가?
가정 폭력을 주장하는 아내, 자신의 가족을 망쳐버린 남편 그런데.. 사실 주인공인 아내 역시 나에게는 조금 답답하고 무능해 보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으면서 자신의 이상은 놓지 못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미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보이는 행동들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보다는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것 처럼 느껴져서 사실 불쌍하다기 보단 어쩔수 없지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세상이 확실히 양극화도 심해지고 돈만을 우선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위선일지라도 돈보다 위대한 가치를 내세우거나 돈만 밝히면 비난했으나 이제는 돈을 과시적으로 다소 폭력적으로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득이 된다면 환호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돈만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듯 하다.
한 가족처럼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는 답장에
어느새 굳게 믿어버렸고
대출 빚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