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남은 날은 전부 휴가 - 이사카 코타로
한 가정의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 딸은 모두 흩어지기로 했다. 아버지는 집에 남고 어머니는 이사를 가며, 딸은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의 휴대폰이 울린다. 아버지는 가족들의 바람난 여자가 아니냐는 비아냥 소리를 들으며 문자를 확인한다. 문자 속 내용은 "랜덤으로 보내 봅니다. 우리 친구 해요. 드라이브도 하고 밥도 같이 먹어요. "였다. 평상시면 그냥 무시할 내용이었지만 가족들은 마지막 날이라는 이유로 한번 만나기로 한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두 남자가 타있다. 미조구치와 오카다다. 운전을 하다 뒤차가 박을 수 있게 급정거를 한다. 사고 낸 뒤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 돈을 뜯어 낸다. 공갈, 협박, 폭력.. 부스지마라는 보스 밑에서 도망쳤지만 그들은 그때 배운 방법으로 똑같이 돈을 벌고 있다. 둘 중 부하인 오카다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미조구치의 제안에 따른다. 만약 불러주는 대로 문자를 보내서 "예"라는 대답을 받으면 놓아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예"라는 답을 받는다.
이렇게 오카다와 하야사카 가족은 만나게 된다. 약속대로 드라이브도 하고 함께 식사도 같이 한다. 그때 미조구치에게서 연락이 온다. 우리가 도망친 부스지마 쪽에 네가 주동해서 도망 나왔으며 너는 지금 도망 중이라고 전했다는 것이다.
오카다는 가족들과 함께 가다가 편의점에 차를 세우고 술에 취한 아버지를 뒤로한 채 딸에게 이야기한다.
"이 차는 오토라 운전하기 쉬워 누군가 나를 따라오는데 내가 가볼 테니 혹시라도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으면 이 차를 선물로 가져가. 기어를 드라이브에 넣으면 제멋대로 갈 거야."
기어를 드라이브에 넣으면 제멋대로 앞으로 간다는 말.
왠지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기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앞으로 가게 되는 거야
뒤에 내용은 오카다의 과거 이야기, 그리고 오카다를 보스에게 넘긴 미조구치의 다음 이야기로 구성된다.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보시길!
내가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이자 작가 역시 자기가 쓰고도 좋았는지 챕터 시작할 때 적어놓은 글귀들이다.
"뭐랄까 자네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헷갈리는걸
아니 무슨 딸기맛 레몬맛처럼 라벨이 붙어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기울임체는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 우리는 가끔 헷갈린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원래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고 가치관은 다양하니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자 모두에게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그래서 작가는 그냥 라벨을 붙여서 사람을 그저 단순하게 인식하고 싶음을 표현한 건 아닐까? 또 세상엔 나쁘기만 한 사람도 좋기만 한 사람도 없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 2분밖에 차이가 안 난다면 날지 않을 거야?
나 같으면 날 거야
8분이고 10분이고 큰 차이 없다고 말하는 건
어차피 인간은 죽으니까 뭐든 상관없어하고 말하는 거랑 같잖아
어차피 언젠가는 죽지만 사는 방식이 중요한 거야."
8분이 걸리는지 10분이 걸리는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날 수 있다면 무조건 날아야 한다는 작가의 표현은 인생에 대한 자신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룰 기회가 생긴다면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라는 응원처럼 느껴진다.
날라서 가든 걸어서 가든 몇 분이 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날고 싶잖아? 그럼 나는 거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소시민들의 삶에서, 우리가 볼 때 흔히 말하는 나쁜 사람들 속에서 따뜻함을 보여주는 다정다감한 작가다. 특히나 남은 날은 전부 휴가는 구성부터 표현까지 모두 마음에 든다. 한 장면도 한 대사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든 것을 이용해 마무리 짓는 작가.. 이분의 책을 읽으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차르랑, 하고 스마트폰이 울렸다.
너는 싫다고 하겠지만 나는 숯불구이가 또 먹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