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AR 타르: 음악은 항상 어디론가 움직입니다.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흐르는 움직임은 백 만 단어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TAR 타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휘하는냐야

어떤 영향을 주는가?
내 안에서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는가?

이 두가지 질문의 답에 따라

좋은 음악이 되어 빛날 수도
텅텅 빌 수도 있지

 

장르: 드라마

감독: 토드 필드

출연: 케이트 블란쳇, 노에미 메랑, 니나 호스, 줄리안 글로버, 앨런 코더너, 마크 스트롱, 시드니 레먼

 

 

줄거리

무대를 장악하는 마에스트로, 욕망을 불태우는 괴물,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 

이 이야기는 그녀의 정점에서 시작된다.

 

 

드는 생각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의 초반은 인터뷰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면으로 진행이 된다. 인터뷰 장면에서는 실제 현실에서처럼 인터뷰 대상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또는 곤란할 만한 질문을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리디아 타르의 대답은 정말 격조있고 위트가 있었으며 여유가 있고 우아함이 있었다. 실존하는 인물이었다면 그 기세와 아우라에 반했을 것이다. 물론 실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만으로도 반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면에서의 카리스마도 정말 뛰어났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학생들과의 교육자로서 태도 사이에서 그 오묘한 모습까지도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지점은 이 모든 장면의 연출이 굉장히 긴 호흡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감히 말하자면 롱테이크로 보여준 장면들 중 단연 최고의 장면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단순히 지휘자적인 어떤 전문 여성인 모습의 연기만 완벽한 것이 아닌 동성애자로서 보여지는 모습과 부모로서 보여주는 모습 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적인 면모의 사람 리디아 타르의 연기까지 완벽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본 연기 중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케이트 블란쳇을 그다지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지만 이번 영화를 보면서 정말 미친 연기가 어떤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정말 살아 있는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는게 그리고 만들어진 인물이 마치 실존 인물처럼 느껴진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가의 존재, 불편함이 가져왔으면 하는 신세계

물론 연기 자체는 케이트 블란쳇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지만 영화에서 가장 거슬리는 존재이자 눈에 띄는 인물은 올가였다. 영화는 올가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이후에 영화 자체의 분위기가 바뀌고 타르를 보는 시선이 바뀐다.

 

올가의 등장 전 까지는 타르는 용인될 만한 존경스러운 인물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크리스타와의 사건이 있는 듯 했지만 그가 보여주는 품위가 모든 것을 잊게 했다. 하지만 올가가 등장했고 그녀를 대하는 타르의 태도에서 이전 사건에 대한 짐작 역시 가능해졌다. 단지 예술만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성적인 욕망 역시도 채우는 기존의 기득권 남성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타르의 몰락으로 더 많은 내용은 보여지지 않았으나 적어도 타르의 본성을 조금은 더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올가는 기존과 동일하게 대응하지 않는 소위 요즘 사람이다. 마치 비건이 더 의식이 있는 사람인 것 처럼 말하는 상대 앞에서 육류의 메뉴를 고르고 지휘자의 악보에 대한 의견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하거나 그와의 식사는 거절하고 놀러 나가는 모습에서 통제되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타르에게는 새로운 매력을 지닌 여성이자 자산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자유인이다. 물론 아직 가진 것은 가능성뿐인 올가가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변화할지, 타르가 이전엔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의 기득권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올가 같은 사람이 변화를 불러 오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부분이 비어있지만 꽉 찬 영화다.

영화는 클래식 지휘자를 면전에 내세웠음에도 마지막 까지 제대로 된 긴 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 문제는 길게 잘 조율된 음악을 선사하지 않지만 중간중간에 적당히 그리고 어쩌면 충분히 좋은 음악들을 이미 들려주었다. 그래서 공연 장면은 없지만 클래식을 다룬 영화로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움은 주면서 욕은 할 수 없게 한다. 나만 괜히 영화가 미워진다.

 

사건에 대한 전말도 가려져 있다. 영화의 주요 스토리인 타르와 크리스타의 관계와 둘 사이의 사건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현실에서 처럼 진실은 모른체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이야기로만 사실로 받아들이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타르의 시선으로만 보고 이해해야 한다. 물론 한쪽 사람의 관점만 본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특별히 유리 혹은 불리하게 작동하도록 그려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확히 알 수 없는 진실에서 결국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은 어느 한 쪽 편을 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영화는 이미 초반부에 타르가 지휘자로써는 위대할지라도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엄청난 존경의 대상은 아님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적당히 권력을 이용하고 또 잘 다루는 사람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두사람 사이의 일은 정확히 모르는 일임에도 그녀가 그다지 불쌍한 쪽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여자의 한계를 뛰어 넘은 위대한 사람을 묘사하는듯 하다가도 보다보면 남녀의 문제가 아닌 권력을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대비로 흐르면서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타르가 비판의 대상으로 옮겨지는 것 같다.

자신의 위치에서 물러나게 될 때 꽤 결렬하게 반대에 나서지만 그런 그녀가 옆집에서 연주를 소음이라 칭하며 떠나갔을 때 결국 욕하면서 연주하는 악기가 굳이 아코디언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본인에 대한 자아성찰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렇듯 영화 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사건임에도 끝까지 어떠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판단은 관객에게 하게끔 만든다. 지능적으로 잔인한 스토리의 구성이 아닐 수 없다.

 

결말도 불친절하면서 또 길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정말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련의 사건들로 정상에서 추락했지만 그녀는 그 위치에서 다시 그 옛날 자신의 심장을 뛰게 했던 번스타인의 지휘 영상을 다시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또 클래식의 위상과는 동떨어진 필리핀으로 가서 게임 음악이라는 새로운 무대에 선다. 누군가는 이것을 몰락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나는 또다른 도전이라 말하고 싶다.

굳이 서식지에서 벗어난 악어가 지금 이곳에서도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마사지를 받고 싶은 마음에 추천 받은 곳에서 어항이라는 표현으로 갇혀있는 소녀들의 숫자를 고르는 모습과 눈을 마주치는 5번 소녀, 구토하는 장면까지 보여준다. 떨어지긴 했어도 끝나지 않는 삶을 보여주는 마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다르게 보는 시각도 가능해 보인다. 마지막 까지 관객이 알아서 채워야 한다.

 

이렇듯 영화는 다양한 부분에서 비어져 있다. 하지만 또 채워져 있다. 상당히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다. 소위 그 적당히를 너무 잘 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부족하게 채워준 영화이지만 이는 나의 식견이 문제라는 생각이지 영화의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기에 스스로가 살짝 비참해질뿐이다.

 

감독은 영화를 비워 놓고 관객 스스로 채워서 완성시키길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강력한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보여주는 영화도 좋지만 이렇게 선과 악의 경계, 성공과 실패의 관점, 권력의 사용과 이를 위해 순응하고 아첨하는 사람들, 기존의 남녀의 상식과 그 안에서 역시 도전을 받는 가치관들 이 영화는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지 않으면서 너무나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잔인하다. 나의 부족한 수준을 너무 잘 드러내게 하기 때문이다.

 

연기가 미쳐서 보다가 2시간 30분이 넘는 꽤 긴 러닝타임에도 마지막 까지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마무리 짓지 않는다. 열린 결말도 좋아하고 불친절한 것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다보고 나면 역시 왠지 욕이 나온다. 

 

나는 네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


저자의 의견을 제외한 정보 및 사진의 출처는 Daum & NAVER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