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나는 말이야, 너의 내일이란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사람들 마음이 사라진 쓸쓸한 장소에
뒷문이 열리거든

재난이 나오게 돼

 

장르: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판타지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하라 나노카, 마츠무라 호쿠토, 후카츠 에리, 마츠모토 하쿠오, 소메타니 쇼타, 이토 사이리, 하나세 코토네

 

 

줄거리

“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스즈메’는 
문을 찾아 여행 중인 청년 ‘소타’를 만난다. 
 
그의 뒤를 쫓아 산속 폐허에서 발견한 낡은 문. 
‘스즈메’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열자 마을에 재난의 위기가 닥쳐오고 
가문 대대로 문 너머의 재난을 봉인하는 ‘소타’를 도와 간신히 문을 닫는다. 
 
“닫아야만 하잖아요, 여기를!”
재난을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수수께끼의 고양이 ‘다이진’이 나타나 ‘소타’를 의자로 바꿔 버리고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스즈메’는 의자가 된 ‘소타’와 함께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꿈이 아니었어”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
재난을 막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며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던 중
어릴 적 고향에 닿은 ‘스즈메’는 잊고 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드는 생각

영상미를 기대했지만 OST가 더 좋았다.

개인적으로 너의 이름은을 꽤 좋게 봤다. 처음 보는 애니메이션 영상미에 이런 맛에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구나 싶었다. 이번 영화도 그런 기대감을 안고 갔다. 하지만 솔직히 아쉬웠다. 조금 더 영상에 힘을 줄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일부러 화려함을 줄이거나 아낀 느낌이었다. 영화의 스토리상 무작정 화려하기만한 영상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거나 영화의 톤과 맞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부러 찾아간 영화관에서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의외로?! 이번 OST가 적절하고 좋았다고 생각된다. 영화의 처음 제목이 나올 때나 여정 중간에 깔리는 음악, 물론 약간 영화와 다른 결의 음악이 차를 타고 다닐 때 나오기도 하지만, 마지막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의 뮤직비디오 같은 장면까지 좋았다. 덕분에 눈호강 보다는 귀호강을 더 하고 온 느낌이다.

 

 

솔직히 내가 일본을, 아픔을 더 잘 알았다면 더 명작이 되었을 것 같다.

처음 지진이 일어나는 장소에서는 몰랐지만 여정이 시작되고 나서 짐작은 갔다. 지금 주인공이 다니는 장소가 이전에 지진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이후에 찾아보니 재난을 겪은 곳이라 소개되어 있었다. 이 영화는 재난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위로의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이 있는 장소는 한 마을, 학교, 놀이공원, 어느 누군가의 집 등 익숙하고 친숙하며 누구나 분명히 가봤던 곳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재난을 겪고 폐허로 남아 있다. 문을 닫기 위해서는 과거의 그 장소의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감정을 공유해야 한다. 영화는 그렇게 그곳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을 떠올리고 추억하면서 다시 문을 닫는 방법으로 이겨내는 것을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지진은 아니지만 상품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사건, 이태원 참사까지 재난이 있어왔다. 그럴때마다 우리 역시 고통을 겪었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남은 자들의 시간이 되었다. 영화는 이런 남은 자들의 마음과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위로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이러나지 않기를 신에 빌며 염원하고 있다고 느꼈다.

기본적으로 판타지 영화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관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작품 안에서 보여지는 감정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분명한 판타지 영화임에도 현실의 감정이 잘 녹아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즈메를 생각하면 왠지 숙연해진다.

주인공의 감정이 사실 조금 난잡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얼굴에 반해서 쫓아 하고, 뜬금 없는 책임의식과 오지랖을 부리며 여정에 나서고, 죽음에 초연한 모습과 나중에는 자신을 보살펴 준 이모에게 딱히 바란 적도 없다는 말을 할만큼 어느 것 하나 쉽게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해도 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모와 조카 사이로 엄마를 잃는 재난을 겪은 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재난을 겪은 아이는 죽음이 과연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동의 한다. 죽음은 불현듯 갑자기 오기도 한다는 것을 이미 받아들였다면 죽음 자체가 그다지 두렵지 않을 수 있다. 죽는 것 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사라지는 슬픔이 더 아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편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물며 나로인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이는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일 수 있다. 구할 방법이 있다면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모에게 한 말 역시 이러한 가치관 속에서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능력이 되는 이모가 나로인해 나이 40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히려 피해를 주며 같이 사는 것이 따로 사는 것보다 고통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모 역시 자신이 한 말이 항상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다고 표현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도 적잖은 어려움 속에서 버텨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재난으로 인해 죽은 이들은 애도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혹은 유가족들에게 때론 너무 가혹한 모습으로 대처한다. 우리는 가끔 살았으니 됐잖아, 다 잊고 새롭게 잘 살아.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살아 남은 자들의 고통도 끝까지 보살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그런 살아 남은 소녀가 죽음에 초연하고 재난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삶에 의지를 보이는 것 역시, 나는 이 의지가 재난으로 트라우마든 외상 후 스트레스든 마음 속 어딘가에 상처를 입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는 응원으로 들렸다.

 

목숨이 덧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죽음이 항상 곁에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는 기원합니다.

앞으로 1년, 앞으로 하루, 
아니 아주 잠시라도 저희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저자의 의견을 제외한 정보 및 사진의 출처는 Daum & NAVER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