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미생]
누군가 미생은 어떤 드라마라고 묻는다면..
"인생 드라마"라는 대답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오피스 드라마라고 하기엔 왠지 아쉽다.
윤태호 작가님의 웹툰으로 먼저 본 작품이었고
그 감동을 드라마로 정말 잘 옮겨 놓았다고 생각했다.
오상식이라는 꽤나 좋은 과장님의 연기도 좋았고
강소라, 변요한, 강하늘이 보여준 신입사원들의 에피소드와 연기도 좋았지만
역시 임시완님이 연기한 장그래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10년을 넘게 바둑만 해왔는데 프로기사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고졸 출신,
어쩌면 아주 이른 나이에 실패자라는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나는 그런 장그래가 자기 객관화가 잘 되있는 모습이 가장 좋으면서도 짠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그것으로 인해 무시받는 상황에서도 부당함이 아닌
살아남아 내일을 도모하려는 태도가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자존심과 오기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차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부끄럽지만 일단은,
내일은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물론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줄도 아는
그저 참고만 있는 존재가 아닌 것에 더 빛났다.
바둑은 기본적으로 싸움이고 전쟁이다.
다가오면 물러서기도 하고
상생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세계다.
그 세계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었다.
패잔병이지만
승부사로 길러진 사람이다.
그가 바둑이라는 세계에세 배워 온 것을
인생에 접목하면서 세상을 이겨내는 듯 보였다.
그 고요하면서도 무서운 그의 "정수"가 인생을 살아가는 나같은 미생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판이 안 좋을 때 위험을 감수하고 두는 한 수,
국면 전환을 꿰하는 그 한 수를
바둑에서는 "묘수" 또는 "꼼수"라 부른다.
묘수가 빛나는 바둑이란
그동안 불리한 바둑이었다는 반증이다.
묘수 혹은 꼼수는 정수로 받습니다.
2013년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한국 타임슬립 장르의 시작이자 끝인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어느날 우연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향을 얻게 된다.
그리고 엉켜진 과거를 풀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서 무언가 한가지만 해결하면 될 것 같지만
그 대가로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무엇인가를 잃는 현재로 돌아온다.
또 사건이 해결되고 과거와 현재가 바뀐다고 한들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시 제자리 걸음이기도 하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특히나 결말까지도 쉽지 않았다.
소위말하는 열린 결말의 마무리였다.
그냥 해피엔딩으로 끝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새드엔딩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인생의 원하는 결말은 본인에게 달렸듯
드라마의 결말도 스스로 정하라는 듯이 보였다.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어쩌면 지금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최선의 선택과 최고의 노력으로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도 하다.
주인공의 친구가 향을 선악과에 비교하는데
그 비유가 정말 딱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 꼭 축복은 아닌 듯 하다.
인생을 결정 짓는 건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라 생각한다.
믿고 싶은 판타지는 믿고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하면 된다
이제 날 잊고 네 삶을 살아.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궁금해할 필요도 없어.
네 순간순간의 선택이 나를 만든 거니까.
말했지.
너는 늘 괜찮은 선택을 했고,
잘살아갈 거라고
그러니까 내 존재는 잊어.
네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보면,
20년 후에 거울에서 나를 만나게 될테니까
2012년 [신사의 품격]
나이 40살의 4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다.
모두가 각자의 일을 하면서 각자의 사랑을 하고 있다.
사실 철없어 보이기도 하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모습들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중요한 순간에는 꽤 괜찮은 어른의 모습도 보여준다.
처음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이상형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이수"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 생각, 가치관, 취미 같은 것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취미가 야구 심판을 본다는 것도 정말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키타카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까칠한 김도진의 대사를 위트있으면서도 깔끔하게 받아치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뻔뻔하고 솔직한 모습까지 현실에 있다면 정말 유쾌하고 함께 하면 항상 즐거울 것 같은 사람이었다.
40살에도 꽤 즐거운 인생을 그리게 해주고
"서이수"라는 좋은 사람을 알게 해준 드라마다.
내 짝사랑은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요.
적성에도 맞고 소질도 있는 편이거든요.
공부에 뜻 없는거 존중해,
근데 넌 꿈도 없어.
그건 존중 못해.
책에 답은 없지만, 길은 있을꺼야.
난 그렇게 믿어
인상적인 자백이었어요.
내가 알게도 내가 모르게도,
내 앞에서도 내 등뒤에서도,
날 좋아해줘서 고마워요.
행복을 예감할 순 없어.
근데 불행은 예감할 수 있다
슬픈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으니까.
2011년 [드라마 스페셜 - 딸기아이스크림]
이 시절도 단만극을 많이 보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처음으로 와.. 연출이라는 게 이런거구나를 느끼게 해준 드라마였다.
사실 흑백으로 보여지는 드라마가 처음엔 다소 생소했었다.
지금은 영화에서도 종종 보아왔던 기법이고
아마 저 당시에도 분명 많이 사용되었겠지만..
내가 인지하는 드라마에서 처음으로본 흑백화면과 컬러화면이 섞인 화면이었다.
드라마는 3년 동안 만난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드라마다.
여자 주인공은 유독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3년이라는 시간 서로에게 편해지기도 하고 소원해지기도 한다.
여자는 매번 약속마다 늦는 남자에게 화가 났다.
시간을 지키겠다고 했으면서 오늘도 늦는 남자..
여자는 남자가 변했다고 느끼며 이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남자는 집에 돌아가는 버스가 사고가 나면서 실종된다.
이후 여러 일이 벌어지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 집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마주한 진실..
딸기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방안에 흩어져 있었다.
여자는 이제 남자를 잊고 살아갈 것을 암시하지만..
마지막엔 딸기 아이스크림도 빛을 잃는다.
이제는 정말 많이 괜찮아졌어요
하지만 딸기아이스크림,
아마 다시는 딸기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할 것 같습니다.
2010년 [드라마 스페셜 - 달팽이 고시원]
사실 달팽이 고시원이 가장 좋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드라마가 나의 삶과 오버랩 되면서 "인생"이라는 타이틀을 걸만한 드라마가 되었다.
사실 고시원에 살게 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줄었다.
늦게 귀가하기도 했고
미니시리즈를 연속해서 볼만한 여유가 없을 때기도 했다.
그래서 단만극을 우연.. 어쩌면 필연처럼 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좋았던 작품들을 더 말하자면 [조금 야한 우리 연애 / 이선균, 황우슬혜], [위대한 계춘빈 / 정유미, 정경호], [비밀의 화원 / 백진희, 민지, 이동규] 등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드라마지만 단막극은 영화나 16부작 이상되는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달팽이 고시원은 고시원에 사는 소위말하는 소시민.. 실패할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안에 새롭게 사람들을 현실 직시하게 만드는 존재가 등장한다. 막 사는 것 같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모습과 그 안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대사들이 좋았다.
크리스마스라는 소재를 다루는 대사들이 특히나 좋았다.
크리스마스가 뭐 별건 줄 알아?
쉬 마려울 때 1분만 참았다가 화장실 가잖아, 그럼 그게 크리스마스야
크리스마스는 일년에 한번이라서 좋은 거야
힘든 와중에 두뼘을 비껴서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는.. 현실을 각인시키는 대사들과 그 사이사이에 응원을 보내는 대사가 좋았다. 여담이지만 [위대한 계춘빈]도 이 윤난중 작가님 작품으로 이 드라마의 대사는 조금 더 위트있는 편이다.
그리고 이 작가님은 [직장의 신], [호구의 사랑],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집필하시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적극 추천하는 드라마다.
기존 드라마에서 다루기엔 다소 쉽지 않은 소재나 설정들이 신선한 즐거움을 주는 단막극의 매력을 알게 해준 드라마다.